호심 김인곤박사는 1928년 영광군 송이도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극심한 가난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에서도 고학으로 목포공립중학교와 성균관대학교를 거쳐 조선대학교와 연세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교에서 교육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기까지 배움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교육계에 투신한 김인곤박사는 25세의 젊은 나이에 전라남도 교육위원(2선)으로 피선되었고, 영광 남중ㆍ농업고등학교 교장, 호남교육신문사 창설 사장, 영광군 교육감, 조선대학교 여자 중ㆍ고등학교 교장, 영산포 중ㆍ상업고등학교 교장(인수경영)을 역임하였으며. 가진 재산 전부를 희사하여 1974년 광주인성고등학교, 1980년 광주경상전문대학, 1983년 광주대학교, 1987년 호심장학회를 창설함으로써 오랜 세월 그토록 소망했던 인재양성의 대 전당을 이룩하였다.
한편으로 김인곤박사는 1988년 정계에 진출하여 2000년 정계를 은퇴하기까지, 제13ㆍ14ㆍ15대 국회의원(3선)으로서 국회 행정위원장, 정무위원장, 문교공보위원, 농림수산위원, 보건복지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국회 광주특위 간사로서 광주민중항쟁의 진상규명을 위해 혼신을 던져 노력하는 한편 광주민주화운동특별법 제정(1995년), 쿠데타 세력의 사법심판(1996년), 국가기념일 지정(1997년), 피해자의 국가유공자 예우 및 5ㆍ18묘역의 국립묘지 승격(2001년) 등 광주문제의 핵심 과제를 해결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1997년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는 김대중 총재의 절대적 신임과 김종필 총재와의 깊은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국민적 여망이었던‘야권대통령후보단일화’를 성사시킴으로써 헌정 사상 최초로‘선거를 통한 여ㆍ야간 수평적 정권교체’의 대역사를 주도하여 한국 정치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민족교육자로서 국가의 백년대계인 후학양성을 위해, 중견정치인으로서 이 땅의 민주화와 국리민복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김인곤박사의 불꽃같은 삶은 후손만대에 전해야 할 귀감이자 우리 광주대학교 가족 모두의 자랑이다.